미국에서 미국 씨티은행 본사를 상대로 낸 키코 손해배상 소송이 정식 재판으로 진행될 경우 국내 키코 소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씨티은행은 물론 SC은행을 통해 키코를 거래한 기업 소송에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심텍이 미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국내 소송과 다른 점은 한국씨티은행이 지배구조상 씨티은행 본사의 지사나 마찬가지이고 씨티 본사가 키코 상품개발과 불법적 판매에도 관여해 본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문이다.
심텍이 미국 뉴욕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심텍은 △미국 씨티은행 본사가 상품을 개발하고 이익을 가져갔다는 점 △객관적 제3자의 위치에서 상품 가격이나 조건을 정해야 하는 계산대리인(Calculation Agent)이 거래 상품의 이해당사자인 한국씨티은행이었다는 점 △씨티 본사가 상품을 국내시장에 팔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계약서를 제공한 점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심텍은 한국과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을 대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키코와 유사한 상품이 판매된 만큼 씨티은행 본사의 개입은 명약관화하다는 주장이다. 씨티 본사에서 한국씨티은행에 파견된 키코판매 핵심 임원이 키코 건으로 국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는 점도 본사 개입의 증거로 제시했다.
한국씨티은행의 키코 판매이익이 미국 본사로 이전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은행들은 그동안 국내 키코 소송을 통해 “반대거래를 통해 키코 거래로 인한 위험을 헤지해온 만큼 은행의 이익은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국씨티은행이 본사와 반대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겼다면 본사의 개입 여부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심텍 측 논리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 법률제도는 우리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상대방에게 증거자료가 될 만한 문서를 요구하고 이메일이나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상대 회사의 담당자를 인터뷰할 수도 있고,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누락할 경우 패소 처리된다.
심텍의 국내 키코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바른의 위인규 변호사는 “그간 은행들은 국내 소송에서 상품가치나 옵션이론가와 관련된 기업 측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해왔다”며 “은행의 자료를 볼 수 있다면 키코 소송의 극적 반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계산대리인’처럼 국내 법조계에선 생소한 법논리를 미국 소송을 통해 제기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심텍은 국내 소송에서 제기된 쟁점인 △상당한 수수료와 마진을 숨긴 채 ’제로 코스트’ 상품이라고 기업을 속인 점 △환헤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환투기성 상품을 팔았다는 점(적합성 원칙 위반) △상품 구조상 은행과 기업의 이익이 제로섬 게임이라는 점을 알리지 않은 점(이해상충) 등을 손해배상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씨티은행 본사는 매일경제신문의 공식적인 해명 요청에 “절차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심텍의 주장이 본안소송 이전에 각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씨티은행과 미국 본사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문제는 소송 전체를 좌우할 아킬레스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심텍 측의 주장은 모두 정황논리일 뿐, 본사와 한국씨티은행의 연관성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 <용어설명>
▷ 키코(KIKOㆍKnock in Knock out) : 기업들이 수출대금에 대한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은행에서 만든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2006~2008년 수출 중소기업들이 원화값 강세에 대비해 이 상품을 샀지만 금융위기로 원화값이 폭락하면서 큰 손실을 봤다.
[박용범 기자 / 전정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