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k Jin Moon

Internship Period: Jan. 7, 2013 ~ Feb. 5, 2013

세계를 이끄는 나라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조직의 생존 전쟁을 최전방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이라는 책을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며 진화하기 때문에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마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말입니다.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그것은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뒤쳐지는 것이고, 도태되는 것입니다. 쳇바퀴에서 떨어지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매순간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을 생명체들의 태생적이며 불운한 운명인 것입니다. 인간 역시 대자연의 일부로서 그러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여기 세계를 이끄는 나라 미국에서 저는 이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case를 망치는 것, 한명의 client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하다 못해 한 통의 문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은 회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이미지를 악화시키며 궁극적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신뢰를 쌓고 좋은 이미지를 만드느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까먹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단지 몇 번의 실수로 회사는 낙오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도태를 막기 위해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치열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켜보기만 해도 되었으면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불행히도 저는 회사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 행하는 고귀한 업무들 중 일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23년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큰 부담으로 다가왔으며 무한한 책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첫 임무는 안타깝게도 제가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찾아왔습니다.
인턴 기간은 공식적으로 1월 7일부터 시작이었고, 저와 파트너 이현우 학생은 시작 전에 대표 변호사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 전주인 1월 2일에 로펌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보시자마자 대표 변호사님께서는 몇 가지 스크립트를 읽어보게 하시더니 저보고 대뜸 내일부터 receptionist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어진 임무는 회사로 걸려온 전화 중 한국 전화를 넘겨받아 문의사항을 파악하여 알맞은 변호사님게 전화를 넘겨드리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메시지를 받고 변호사님들께 메일로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글로 적으니까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아 보여 아쉽군요. 그러면서 변호사님께서는 저의 멘탈을 뒤흔드는 이러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리셉션은 회사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너가 전화로 상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급 클라이언트들이다. 그들은 리셉션이 인턴 학생이라는 것을 모른다. 만약 그들이 너가 인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회사에 큰 타격이 올 것이다 . 잘 나간다는 로펌회사에서 리셉션을 인턴에게 맡긴다는 소문이 돌면 회사 운영 힘들어진다.’
회사에 계신 직원들을 포함한 모두가 너를 인턴사원으로 온 학생이 아닌 정직원으로 대할 것이니 책임감을 갖고 잘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연습게임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실전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변호사님의 요구사항들….. ‘목소리는 애처럼 안들리게 권위있으면서도 공손하게 해라, 전반적으로 낮은 톤으로 그러나 문장의 끝 음절은 살짝 높은 톤으로 올려라, 단어마다 끊어서 말하고 쓸데 없는 말은 하지말아라, 눈치있게 대응해라’ 등등은 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습니다. 제가 리셉션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는지 못 했는지, 어떤 전화가 걸려왔는지, 이에 대해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 얘기해 봐야 별로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뭐, 시작한지 이틀만에 다른 업무를 하게 된 것으로 보면 윗분들의 평가가 좋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제가 그 업무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걸려온 전화의 수화음은 저의 혼을 빼놓았으며, 무엇이 그리 급하신지 client가 빠르게 쏟아내시는 단어들은 하나하나가 저를 panic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접수하여 변호사님들께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그 때 느꼈던 당혹감, 좌절감 및 부담감이 생생합니다. 아마 앞으로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도 그 때 그 느낌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뭐든지 첫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그러한 감정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에 버금갈 만큼의 부담감 혹은 책임감을 지우는 일들이 분명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러한 상황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그러한 상황이 제 심장을 얼마만큼 쿵쾅거리게 할 지는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턴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그 다음으로 주목한 부분은 직원분들의 실용성(practicality)을 중시하는 태도였습니다. 이는 특히 대표 변호사님으로부터 많이 느꼈습니다. 실용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란, 어떤 task가 주어졌을 때 이를 조금이라도 더 효율성있게 잘 하는 것입니다. 대표 변호사님께서는 이러한 업무 처리 태도를 저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두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자신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저에게는 굉장히 낮선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질문하는 것을 자신의 무능함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질문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혼자만의 판단으로 일을 하다가 결국 상사의 의도와 다른 엉뚱한 결과를 나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시간, 노력, 돈 등 쓸 데 없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비효율적입니다. 대표 변호사님께서는 한국의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질문을 잘 하지 않는 저희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회사의 대표인 자신에게 직접 질문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회사 내의 모든 직원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에 의해 회사가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실용성과 관련하여 대표 변호사님께서 강조하신 두 번째는 어떤 task가 주어졌을 때 주먹구구식으로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이에 따라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 task가 아무리 사소해보일지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에 착수하기 전에 하는 몇 초간의 생각이 일 전체의 결과를 바꾸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정리가 끝난 서류들을 넣을 박스를 정할 때도 아무 박스나 쓰는 것이 아니라, 서류 덩어리 전체의 가로, 세로, 높이의 길이를 재서 이에 알맞는 크기의 박스를 쓰는 것입니다. 이 때 박스의 양 옆에는 들기 쉽도록 하기 위해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손잡이 구멍이 있으면 좋겠죠. 만약 구멍이 없으면 직접 구멍을 뚫을 수도 있겠구요. 실제로 저는 아무 박스나 갖다 썼다가 변호사님께 호되게 혼났습니다. 이러한 실용성과 관련된 직원분들의 태도는 인상깊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의 저는 한 달 전 처음으로 회사에 와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기 저기 기웃거릴 때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정장차림으로 근무하는 것도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회사에 계신 외국인 변호사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마 김앤배 로펌회사라는 새로이 직면한 상황에 조금은 적응한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라도 같은 상황에 한 달 정도 놓여있으면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하겠지요. 문제는 새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지거나, 생활패턴을 바꾸는 등 외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생각을 얼마나 바꾸느냐인 것 같습니다. 저의 내면은 과연 미국이란 땅의 김앤배 로펌 회사에 있으면서 얼마나 변화하였을까요? 이와 관련해서 인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고민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대표 변호사님께서 하신 말씀들 중에 ‘한국에서 가져온 pottery를 깨고 새로운 stainless 용기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말이 과연 무슨 뜻일까에 대해서 항상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인턴 기간이 끝난 지금 미숙하나마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이 만든 stainless용기는 지금 제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용기를 만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도와주신 김봉준 대표 변호사님을 비롯한 모든 김앤배 직원분들, 그리고 뉴욕 총영사관에 계신 박기호 영사관님, 경찰대학 학장님, 그리고 인턴 기간 내내 항상 저희 두 학생을 걱정해 주시고 관심있게 지켜봐주신 경찰대학 지도실의 지도실장님과 지도교수님들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