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뉴스] 심텍, 美법원에 집단소송

국내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들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이미 미국 사법당국이 조사를 진행 중인 데다 키코(KIKO) 피해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기한 개별 소송과도 맞물려 향후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뉴욕 기업소송 전문 법무법인 김앤배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국내 전자부품업체 심텍을 대표 당사자로 씨티그룹과 바클레이스은행,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뱅크, JP모건체이스 등을 대상으로 뉴욕주 남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17일 밝혔다.

소장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담합을 금지하는 미국 반독점법인 셔먼법과 뉴욕주 상법을 어기고 공모를 통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기업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피고 은행들이 `작전`을 통해 국제 외환시장 기준환율(WM/로이터스 레이트)을 조작해 환헤지에 나선 기업에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소장에서 직접 `키코`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봉준 김앤배 대표변호사는 “환율 조작이 입증되면 기업들이 입은 키코 피해가 불가피한 환변동이 아닌 은행 측 인위적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셈”이라며 “키코 소송에 직접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은행의 환율 조작 의혹과 관련해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키코를 비롯해 피고 은행의 환헤지 상품으로 피해를 본 국내 기업은 누구나 원고가 될 수 있다.

이 소송은 지난 7일 매사추세츠주 헤이버힐 퇴직연금이 이들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의 `후속타` 성격을 띤다. 헤이버힐은 은행들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상을 요구했다. 헤이버힐은 글로벌 은행들의 외환 거래 비중이 미국 전체 외환시장(5조달러)의 60%에 달하기 때문에 수요ㆍ공급 조작을 통해 환율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현지 법조계와 국내 키코 피해 기업들은 이번 집단소송이 씨티은행 본사를 상대로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제기한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심텍과 상보, 부전 등 한국 씨티은행의 키코 계약사들은 “미국 씨티은행이 키코 상품을 개발하고 이익을 가져갔다”며 지난 7월 미국 뉴욕 법원에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씨티은행은 `한국 씨티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는 미국 본사와 직접 관련이 없고, 한국 법원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라는 요지로 28쪽 분량의 소송 각하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집단소송에 부담을 느낀 씨티은행이 소 개시 결정 이전에 합의나 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심텍 고위 관계자는 “환율 조작에 대한 집단소송과 키코에 대한 소송 등 두 갈래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환율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 키코 문제에서 글로벌 은행들의 `악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고 소송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즉, 은행에 유리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인 상품의 녹인(Knock-in) 구간 이탈 자체가 은행 개입으로 인한 것이라면 기업의 환차손에 대해 은행이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봉준 변호사는 “최근 유럽과 아시아 각국 법원에서 파생상품 판매에 대한 은행의 잘못을 인정하는 추세”라며 “미국 법 제도에서는 은행의 자료를 원고 기업이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만큼 정보가 차단된 한국과 달리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 = 박봉권 특파원 / 서울 = 전정홍 기자]

기사원문: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1148321